
문학 행사에서 박수가 사라질 때, 오히려 더 많은 말이 시작되기도 한다. 지난 30일 화성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금종례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지금, 여기 Here and now 출판기념회가 그랬다. 그날의 행사장은 환호보다 고요로 성취보다 질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보통 출판기념회를 ‘도착의 자리’로 이해한다.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고, 그 결과를 축하하는 시간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의 자리는 달랐다. 축하의 언어는 절제되었고 대신 삶의 속도를 다시 묻는 침묵이 공간을 채웠다. 시를 쓰는 사람과 시를 읽어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문학이라는 언어로 자기 삶의 태도를 점검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금종례 시인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멀리 오지 않았다. 다만 지나온 시간을 서두르지 않았고, 다가올 내일을 앞당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 문장은 출판 소감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태도 선언처럼 들렸다. 무엇을 얼마나 이뤘는지가 아니라, 어떤 속도로 살아왔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었다.
그는 이번 시집을 성과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까지 충분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건네는 한 권의 안부 인사”라고 설명했다. 이 표현은 묘하게도 우리 사회의 익숙한 질문을 뒤집는다.
우리는 늘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이미 살아온 시간은 어땠는지’를 되묻는다. 도착을 증명하기보다 존재를 확인하는 언어, 그것이 이번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지금, 여기 Here and now』는 지나간 시간을 미화하지도, 다가올 미래를 앞당겨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절제된 언어로 붙잡는다. 빠른 결론과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낯설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이 이 시집의 힘이기도 하다.
출판기념회 현장에서도 이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시인의 말과 낭독된 시 구절 앞에서 참석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잠시 눈을 감았다. 누구도 서둘러 반응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시의 문장이 겹쳐지는 순간에 가까웠다. 그 시간만큼은 모두가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었다.
이날 이어진 축하 영상들 역시 단순한 덕담에 그치지 않았다. 문학이 개인의 성취를 넘어 사회와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게 만드는 메시지들이었다. 이는 이번 출판기념회가 한 시인의 신작을 알리는 자리를 넘어, 문학의 역할과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여덟 번째 시집이라는 이력에도 불구하고, 금종례 시인은 이번 책을 하나의 정리나 결산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살아왔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말에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시간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태도다.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인색하게 허락하지 않는 말이 바로 이런 문장일지도 모른다.
행사의 끝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이렇게 말했다.
“시가 삶을 설명하기보다, 삶 옆에 조용히 머무는 언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설명하지 않겠다는 선언, 앞서지 않겠다는 다짐. 그것은 시에 대한 말이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태도이기도 했다.
그날 화성상공회의소에 남은 것은 화려한 장면이 아니었다. 성취보다 존재를 속도보다 태도를 이야기하는 시의 온기였다. 그리고 그 온기는 조용하지만 오래 남아, 각자의 삶 속 ‘지금, 여기’를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아마도 이런 순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