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1919년의 외침을 마음에 새기며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3월 1일, 한반도는 독립을 향한 한민족의 염원이 담긴 만세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인사동 태화관에서는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 낭독이 있었고 이후 만세운동은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3.1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으며, 1920년 임시정부는 3.1절을 국경일로 지정하였다.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3.1절은 4대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2월의 끝자락에 이천호국원의 태극기 동산을 바라보며 3.1절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국립이천호국원과 이천시에서도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호국원 내 관리동에는 이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수흥 의사의 이름을 딴 회의실 ‘이수흥홀’이 있다. 

 

이수흥 의사는 만주로 망명해 사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항일 무장투쟁 단체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육군 주만참의부에 가담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이수흥 의사는 1929년 2월 27일,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고,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이천시 창전동에 위치한 이수흥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호국원 인근 안성시에는 3.1운동기념관이 있는데 전시 콘텐츠와 함께 독립운동의 의미를 마음에 되새길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를 비롯해 외침과 내적 혼란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신분계층을 초월하여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그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그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이어가야 한다.

 

현충원, 호국원을 비롯한 국립묘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계신 곳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와 미래 세대가 그 뜻을 기억하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가족의 손을 붙잡은 어린 손자, 손녀와 그들의 부모가 함께 참배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묘소 앞에 선 아이가 가족들이 묘소 앞에서 고개 숙여 참배하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시간이 흘러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책임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라날 것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일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대를 넘어 숭고한 정신을 전하는 과정이며, 공동체의 가치를 이어가는 일이다. 호국원에서의 참배가 아이의 마음속에 작은 울림으로 남아, 훗날 나라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역사는 과거의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처럼 1919년의 외침은 그저 과거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이번 3.1절에 기념행사에 참여하거나 마음속으로라도 그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며 순국선열의 뜻을 깊이 돌아보고, 우리가 앞으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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