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국제결혼이 성행하고부터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이 지속적으로 늘면서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접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결혼하는 열 쌍 중에서 한 쌍이 외국인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있을 만큼 국제결혼이 성행하고 있고, 2014년 현재 국내 거주 외국인은 120만 명 이상을 돌파하였다.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국내에는 다문화가정이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다문화가정의 증가로 인해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혼란과 문제가 예상되었다. 일부 농어촌 초등학교의 경우, 신입생의 상당수가 다문화가정의 자녀일 만큼 이 문제는 우리사회에 있어 뿌리 깊게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은 그동안 순수혈통, 가부장 단일 문화주의를 고수해 온 한국사회가 문화적 다양성에서 기인하는 ‘차이’를 어떤 시각에서 보고 대처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게 만든다. 그 동안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세계 유일의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도래하게 될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씁쓸하다! 빼빼로 데이날 때문에 농업인의 날이 묻혀간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내 주변사람들도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이 아닌 빼빼로 데이날을 먼저 생각하는 사실이 정말 안타깝다. 11월 11일은 우리 농업 및 농촌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자는 취지에서 1996년 제정한 법정기념일인 '농업인의 날'로 지정되었다. ‘농민의 날’이 11월 11일로 정해진 이유는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날보다 의미있고 기억해야 하는 날 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 사이에는 늘외면받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부터라도 ‘농업인의 날’ 꼭 기억하고 앞으로는 우리 토종의 것을 더욱 아끼는 마음을 가슴속으로 약속해 본다. 빼빼로데이는 1983년 롯데제과에서 초코 빼빼로를 처음 출시하였는데, 당시 영남지역 소재의 여중생들 사이에서 '빼빼로처럼 빼빼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에서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롯데제과의 이러한 마케팅 활동과 함께 빼빼로데이가 일반인들에게까지 유행으로 급속도로 번지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빼빼로를 꼭 주고받아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인식될 정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의 반포를 기념하고 이로써 우리 글자인 한글을 기리기 위해서 법으로 정했다. 그러나 한글날이 무슨 근거로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려 10명 중 4명 정도가 알지 못한다고 한다. 또한 훈민정음 반포일을 근거로 삼은 사실조차 아는 사람은 57.8%에 불과할 정도다. 다시 말하면 국민들 절반이 한글날이 왜 생겼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도 심각한 문제이다. 한글날을 공개적으로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부터이다. 한글날이 10월 9일로 된 것은 1940년 7월에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 에 나오는 기록에 의해서였다. 이 책에 실린 정인지의 서문에 9월 상한(上澣)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에 따라 9월 상한 즉 상순(上旬)에 반포된 것으로 보고 9월 상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양력으로 다시 계산하여 결정함으로써 이 무렵부터 공휴일로 지정했다. ‘한글’이 널리 퍼진 것은 조선어학회가 중심이 되어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이 되던 해인 1926년에, 우리글 반포 기념일인 ‘가갸날’을 정하여 기념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가갸날은 ‘한글날’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