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인천광역시 시립박물관은 2025년도 3분기에 13명의 시민으로부터 624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2분기 기증유물 수를 합친 것보다 37% 증가한 것으로, 시민들의 기증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기증에는 인천에서 성장한 걸출한 동양화가 이열모 화백의 작품 및 유품 362점을 비롯해 인천 시민의 추억이 얽힌 오성극장, 양키시장(송현자유시장), 인천 허바허바사장 자료 등 희귀 유물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열모 화백(1933~2016)은 충북 보은 출생으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인천으로 이주해 인중(仁中)을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경희대와 성균관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한 그는, 담백하고 격조 있는 문인화를 선보이며 한국 화단의 중진으로 활약했다.
이열모 화백의 작품과 유품은 고인이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예술가로 성장한 인천의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 유족의 뜻에 따라 시립박물관에 기증됐다.
기증품에는 인물화와 문인화(꽃·새·사군자·게 등)를 비롯해 1960년대 수련기 초기작부터 완숙한 경지의 실경산수화, 추상적 풍경화에 이르는 2010년대 만년작까지 포함돼 있어, 그의 예술 세계 전모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아울러 사생 여행 중 촬영한 풍경 사진과 함께, 이 화백이 사용했던 붓과 먹, 물감 등도 기증돼 창작 과정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인천에서 성장한 화가답게 포구를 그린 ‘군선(群船)’과 학창 시절 다녔던 웃터골 인천중학교 풍경을 담은 작품 등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 화백은 동양화가로선 드물게 풍경 현장 스케치를 철저히 하고, 이를 작품을 완성시키는 창작 방식을 처음 시도한 것으로 이름 높다.
자극적인 시각 매체들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이 화백의 실경산수화는 누워서 산수를 유람한다는 뜻의 ‘와유산수(臥遊山水)’ 경지를 선사한다.
오성극장 자료는 오성극장 창립자 고(故) 오윤섭 일가에서 기증됐다.
오성극장 철거 전 진행된 인천시립박물관의 긴급 학술조사 과정에서 생긴 인연이 이번 기증으로 이어졌다.
기증된 자료는 1972년 개업 당시부터 1996년 씨네팝으로 재개관하기 전까지의 것들로, 오성극장의 입장권판매상황 기록과 영화 상영 실적 서류, 기념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업 기념품으로 제작한 부채는 세월의 흔적으로 낡았지만, ‘드디어 개관!!’, ‘인천 최고의 시설’ 등 오성극장의 자부심을 담은 문구가 여전히 눈길을 끈다.
공중전화와 수세식 위생시설 등 ‘오성극장 오대(五大) 자랑’이 적혀 있어 인천 극장가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던 당시의 분위기를 전한다.
입장권 판매상황 기록부에는‘마이클잭슨의 문워커’, 유덕화 주연의 ‘묘가십이소’ 등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개봉했던 영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입장권 가격이 2천 원에서 3천 원에 불과해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며, 영화별 관람 인원을 통해 당시 인천 시민이 즐겨 본 작품들을 엿볼 수 있다.
송현자유시장 상인회가 기증한 중앙상사 관련 유물도 흔히 ‘양키시장’으로 불린 이 지역의 향수를 되살린다. 이곳 역시 철거 직전 인천시립박물관의 긴급 학술조사 과정에서 생긴 인연이 기증으로 이어졌다.
이번 기증을 통해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시장 기록물과 물품이 보존됐으며, 1970년 시장 배치도와 최근 배치도를 통해 50여 년간의 변화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소방시설비 징수 장부, 청소비 수금대장, 점포별 운영회비 장부 등은 시장 운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인천 허바허바사장’ 자료도 주목된다. 고(故) 송학선 사장이 경동사거리에서 운영한 사진관 ‘인천 허바허바사장’은 30년 넘게 인천 시민의 일상을 담아왔다.
기증품에는 대형 카메라, 즉석카메라, 조명, 출장용 가방 등 다양한 촬영 장비가 포함돼 있으며, 당시 사진관의 분위기와 시민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경동사거리의 명물로 자리했던 사진관 간판도 함께 기증돼 의미를 더했다.
이 밖에도 개화기 인천에 진출했던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 엽서와 서예가 동정 박세림의 ‘난봉화명(鸞鳳和鳴)’ 글씨 등 인천의 생활과 문화사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기증됐다.
1905년 서울의 한 외국인이 쓴 세창양행 맥주 주문 엽서는 당시 상거래 방식과 수입 품목을 알 수 있게 하며, 1969년 결혼식 선물로 받았던 ‘난봉화명’ 글씨는 부부의 화합을 기원한 서예가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김태익 인천시 시립박물관장은 “시민들께서 기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어 매우 감사드린다. 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흥미로워할 유물들이 많아 시민들의 향토사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립박물관은 인천의 역사, 문화, 생활과 관련된 전시 및 보존 가치가 있는 유물을 상시적으로 기증받고 있다.
기증 신청한 유물은 심의를 거쳐 기증 여부가 결정되며, 기증된 유물은 박물관에 영구히 보존된다. 또한 유물 중 일부는 이듬해 ‘기증자 명예의 전당’에 1년간 전시된다.
유물 기증 관련 문의는 전화 또는 전자 우편으로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