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가족도 못 돕는 게 법이냐” 다문화 가정의 절박한 호소

  • 등록 2025.11.15 15: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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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국 규정으로 다문화 가정의 자영업자들이 직면한 ‘이중고’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실 반영한 제도 개선 필요성 대두

 

[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한국의 다문화 가정들이 출입국 규정으로 인해 고충을 겪고 있다. 최근 한국 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 아내와 함께 쌀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외국인 어머니가 가게 운영을 돕지 못한다는 출입국 규정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규정은 외국인 가족의 자연스러운 도움마저도 ‘노동’으로 간주하고 있어, 가족 경영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A씨는 “같은 가족인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엄마가 딸 도와주는 것도 불법이라니 말이 됩니까?”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인 가족끼리는 자연스럽게 해 온 일을 외국인 가족만 불법으로 보는 것은 제도적 차별이라는 것이다. A씨의 가게는 베트남인 장모님의 전통 방식을 바탕으로 한 메뉴와 레시피로 운영되지만, 장모님은 C-3 단기 복수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기 때문에 출입국 당국은 “가게 운영 관여 불가”, “주방 출입 금지” 등의 경고를 내렸다.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외국인의 경제활동을 비자 종류에 따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특히 C-3(단기방문) 비자의 경우 “노동·영리활동 금지” 조항이 명시돼 있어,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도움조차 ‘노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출입국 당국은 “식당 운영에 기여하는 행위는 무급이라도 노동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규정이 한국 사회의 다문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 한 이민정책 연구자는 “한국은 이미 다문화 가정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는 사회입니다. 가족 간의 문화·레시피 전수, 생활 지원까지 노동으로 보는 기준은 시대에 뒤처져 있습니다”라고 비판했다.

 

베트남 출신 아내 B씨는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외국인 어머니’라는 이유만으로 가족의 기본적인 도움조차 차단된 현실에 깊은 상처를 호소했다. B씨는 “국적까지 따고 한국 사람이 됐는데, 가족이 함께 가게도 못한다면 저는 누구를 위한 한국 사람입니까?”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다문화 가정 증가로 인해 가족 경영 자영업에서의 ‘가족 도움 허용 범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외국인 가족의 ‘무급 가족 보조’에 대한 합리적 기준 마련과 국적 취득자의 직계가족 체류 지원 확대, 출입국 일선 단속 기준 표준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 가정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왔지만, 외국인 부모는 여전히 ‘노동자’, ‘불법취업 위험군’으로만 취급되는 제도 구조는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 A씨는 “가족이 함께 노력해 만든 작은 가게입니다. 그런데 법이 가족을 갈라놓고, 서로 돕지 못하게 만듭니다. 한국 사회는 다문화 가족에게 너무 가혹합니다”라며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문제는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제도 개혁의 과제가 되고 있다. 다문화 사회로 급변화하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법과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문수철 기자 aszx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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