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헤드라인=문수철 기자] 기자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권력이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행정이 누구를 위해 움직이는지, 시민의 삶에서 무엇이 외면받고 있는지 묻는다. 답변이 부족하면 다시 묻고, 설명과 사실이 다르면 그 차이를 기록한다. 그렇게 남을 향해 질문하는 일에 익숙해진 사람이 정작 자신을 향한 질문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오효석 기자의 『내 얼굴에 침뱉기』는 그 질문을 피하기 어렵게 만드는 책이다. 언론의 역할을 그럴듯한 말로 설명하기보다 기자라는 이름 뒤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모습을 꺼내 놓는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읽는 동안 씁쓸했고 몇몇 대목에서는 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기자 생활 19년. 그 시간은 이 책을 평가하는 자격이 되기보다, 책이 던지는 질문을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됐다. 오랫동안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태도까지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력이 쌓이는 동안 취재 능력과 함께 익숙해진 관행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관계는 어떤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내 얼굴에 침뱉기』라는 제목부터 거칠다. 그러나 책에 담긴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 거친 표현이 언론 내부를 비판하는 일의 난처함을 드러낸다는 생각이 든다. 동료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순간 자신이 속한 업계의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면 잘못된 관행은 계속된다. 저자가 택한 제목에는 그 곤란함을 감수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듯하다.
기자라는 직업이 특권으로 바뀌는 순간
책에서 눈길이 오래 머문 것은 기자라는 신분을 일상의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직업을 내세워 상대를 압박하고, 기대한 대접을 받지 못하면 불쾌함을 드러내는 태도다. 취재 현장에서 필요한 권한이 개인의 편의를 얻는 수단으로 옮겨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자에게 질문할 기회가 주어지고 자료 접근이 허용되는 이유는 그 결과가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그 권한을 사적인 관계에서 사용하면 상대는 곤란해진다. 정당한 요구인지 따지기 전에 거절했을 때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하게 된다. 기자가 실제로 기사를 쓰겠다고 위협하지 않더라도 그 신분 자체가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취재 과정에서 필요한 협조와 개인적으로 받고 싶은 대우다.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일과 자신을 특별히 대접하라고 요구하는 일은 목적부터 다르다. 그 경계가 흐려지면 기자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개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을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대우에 대한 욕망은 그래서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기자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화를 내거나 기대한 만큼 예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대를 문제 삼는 태도에는 직업과 자신을 혼동하는 위험이 있다. 기자라는 이름이 나를 높여 주기를 바라기 시작하면 그 이름에 따르는 책임은 뒷자리로 밀려난다.
존중은 명함을 보여 준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사실을 정확히 확인하고, 반론을 듣고, 잘못 보도했을 때 책임지는 일을 반복해야 쌓인다. 독자와 취재원이 기자를 신뢰하는 이유도 결국 그 과정에 있어야 한다.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에 무엇이 담겨 있는가
선거를 다룬 대목에서는 언론과 지역 권력의 관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책은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보다 당선 이후의 홍보예산과 각종 사업에 관심을 두는 기자들의 모습을 짚는다. 누가 주민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지 살펴야 할 시기에 누가 자신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지 계산하는 것이다.
이런 시선은 취재의 출발점을 바꾼다. 후보자의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 예산은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지, 과거의 행정과 의정활동은 어떠했는지 묻는 대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직 기사가 작성되기 전부터 질문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그 관계는 남는다. 가까운 후보가 당선되면 더 많은 정보를 받을 수 있고, 기관의 사업을 맡을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대가 커질수록 불편한 질문을 꺼내는 일은 어려워진다. 친분 때문에 말을 순하게 고치고, 설명이 부족한데도 한 번 더 묻지 않는다면 독자는 그만큼 덜 알게 된다.
지역 언론에는 취재원을 자주 만나야 하는 현실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면 서로의 얼굴과 사정을 알게 되고, 취재 현장 밖에서 마주치는 일도 생긴다. 그 가까움은 지역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관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보도의 판단에 끼어들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가까운 관계에서 더 필요한 것은 기준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는지, 친한 사람의 문제도 같은 무게로 다룰 수 있는지,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받는 대가로 침묵을 요구받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책 속 선거 이야기는 그 기준이 사라졌을 때 기자의 관심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보여 준다.
작은 돈과 부탁에 담긴 관계의 무게
작은 액수의 돈을 상습적으로 빌리는 이야기도 오래 남았다. 큰 금액의 부정행위라면 문제를 알아보기 쉽다. 그러나 소액의 부탁은 개인적인 사정이나 친분이라는 설명 속에서 지나가기 쉽다. 바로 그 지점에서 책은 독자를 멈춰 세운다.
중요한 것은 액수만이 아니다. 돈을 부탁받은 사람이 편하게 거절할 수 있었는지, 기자라는 신분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말할 수 있었는지가 함께 따져져야 한다. 거절 이후의 관계가 걱정돼 마지못해 응했다면, 그 부탁에는 겉으로 드러난 금액보다 훨씬 무거운 부담이 들어 있다.
부탁한 사람은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내 의도에 위협이 없었다는 설명만으로 상대가 느낀 압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공적인 영향력을 가진 직업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이 대목에서 언론의 신뢰가 무너지는 과정도 생각하게 된다. 신뢰는 큰 사건 하나로만 무너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사적인 요구, 갚지 않은 작은 돈, 호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속에서도 닳아간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취재원은 기자의 질문을 시민을 위한 질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진다.
기사가 아무리 공익을 말하더라도 기자의 일상적인 행동이 그 말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설득력은 약해진다. 기사와 생활을 완전히 별개의 영역으로 둘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을 길들이려는 행정과 정치의 책임
책의 문제의식은 기자 개인의 일탈에만 머물지 않는다. 언론과 관계를 맺는 행정과 정치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한다. 비판을 피하고 싶은 기관과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기자의 이해가 만나면, 서로에게 편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 관계에서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시민의 알 권리다. 기관은 성과를 부각하고 싶어 하고, 언론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면 사업의 효과를 따져야 할 기사에서 기관의 설명만 커지고, 예산 집행의 문제를 물어야 할 자리에서 질문이 줄어들 수 있다.
언론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이런 문제를 넘겨서도 안 된다. 언론사 운영에는 비용이 들고, 취재와 제작에도 돈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 언론의 수익 기반이 넉넉하지 않다는 현실은 외면할 수 없다. 그렇기에 광고와 보도의 관계를 어떤 원칙으로 관리할 것인지 더욱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광고를 받았다는 사실이 모든 보도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광고 관계 때문에 비판을 접거나 취재를 멈춘다면 그것은 보도의 문제다. 경영의 어려움을 설명하는 것과 보도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
행정 역시 언론을 우호적인 보도를 확보하는 대상으로 대하기보다 자신의 업무를 설명하고 검증받아야 할 상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홍보예산을 집행하고 취재를 지원하는 과정에 납득할 만한 기준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기자의 윤리와 기관의 투명성이 함께 작동해야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다르다’는 말로 끝낼 수 없는 독서
이 책을 읽는 기자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저런 사람들 때문에 언론이 욕을 먹는다”일 것이다. 그 말에는 타당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거기에서 생각이 멈추면 책 속 잘못은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자신은 점검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된다.
내게 더 오래 남은 질문은 내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지나친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것이었다. 오래된 친분 때문에 질문을 줄인 적은 없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설명을 기사에 옮긴 적은 없었는지, 상대의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았는지. 기자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런 질문은 더 자주 필요하다고 느낀다.
경험은 판단을 빠르게 해 주지만 때로는 확인을 생략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이 그 사람의 말을 더 쉽게 믿게 할 수 있다. 현장을 오래 봤다는 자신감이 새로운 문제를 과거의 틀에 넣게 할 수도 있다. 경력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수고까지 대신해 주지 않는다.
『내 얼굴에 침뱉기』의 의미를 나는 그 점에서 찾는다. 언론 내부의 불편한 모습을 읽고 타인을 비난하는 데서 끝내기보다, 자신의 취재와 관계를 다시 살피게 한다는 점이다. 책이 꺼낸 사례에 동의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일 다음에는 내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지 묻는 과정이 남는다.
물론 책 속 사례를 모든 기자의 모습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현장을 지키고, 자료를 확인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까지 한꺼번에 폄하한다면 언론을 비판하는 일 역시 정확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성실한 기자가 있다는 이유로 잘못된 관행을 덮을 수도 없다.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권력과의 관계를 사적인 이익에 사용하는 행동이 반복되면 정직하게 취재하는 기자들도 함께 의심받게 된다. 내부의 문제를 분명하게 말하는 일은 그들의 일을 지키는 데도 필요하다.
동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편하지 않다. 같은 현장에서 다시 만나야 하고,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불편함을 피하려고 침묵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관행을 배운다.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이어져 온 행동이 다음 사람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전달된다면 언론의 변화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자의 이름 앞에 다시 서다
오효석 기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사례를 구성해 던진 질문들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독자에게는 기사 뒤에 있는 관계를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행정과 정치에 몸담은 사람에게는 언론을 대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자에게는 자신의 명함과 행동 사이의 거리를 확인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내게 이 책은 기자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요구해 왔고, 그 이름으로 무엇을 책임져 왔는지 묻게 했다.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독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행동을 앞세웠는지, 취재원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비해 필요한 질문을 끝까지 하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생각하게 했다.
언론에 필요한 성찰은 거창한 선언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부탁 하나를 삼가는 일,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질문을 하는 일, 광고와 기사 사이의 기준을 지키는 일, 잘못을 확인했을 때 고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런 선택이 반복돼야 기자라는 이름에도 무게가 생긴다.
『내 얼굴에 침뱉기』를 읽으며 느낀 불편함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알아보는 눈이 자신의 행동 앞에서도 흐려지지 않도록 익숙한 관계 속에서도 질문을 놓치지 않도록 말이다.
남을 향해 질문해 온 시간만큼 자신에게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기자의 이름으로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이 책이 남긴 그 질문에 앞으로 쓰는 기사와 취재 현장에서의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수철 | 경기헤드라인 대표 기자·‘버티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