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1월 30일 게재된 케이부동산뉴스 김교민 기자가 게재한 ‘기자실… 왜 본질을 외면하는가’ 칼럼은 기자실 논란을 두고 언론의 본질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주장에는 몇 가지 짚어봐야 할 논리적 허점이 있다.
권력 감시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의회의 위법과 행정의 월권, 예산 낭비를 감시하는 것은 언론이 반드시 해야 할 책무다. 이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칼럼은 정작 ‘본질’을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원칙 하나를 놓쳤다.
언론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하나의 본질만을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칼럼은 기자실 논쟁을 의자와 책상 하나를 둘러싼 갈등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기자실 논란의 핵심은 의자도, 책상도 아니다. 공공기관 안에 마련된 기자실이 누구에게 어떻게 개방되는지, 이용 기준은 공정한지, 정보 접근 기회가 특정 언론에 편중되지 않는지, 운영 원칙은 투명한지가 핵심이다.
이 문제는 언론의 취재 환경과 직결되는 공공의 문제다. 이를 단순히 ‘자리 싸움’으로 축소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단순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왜 기자실만 이야기하고 중요한 현안은 다루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왜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 언론은 기자실 문제도 취재할 수 있고, 지방자치법 위반도 취재할 수 있으며, 행정사무감사도 감시할 수 있다. 기자실을 보도했다고 권력 감시를 포기한 것이 아니며, 권력 감시를 한다고 기자실 문제를 외면해야 할 이유도 없다.
둘은 경쟁하는 의제가 아니라 함께 감시해야 할 공공의 영역이다. 그런데도 그 칼럼은 기자실 문제를 제기한 언론을 향해 “본질을 외면했다”고 단정한다. 과연 누가 언론의 본질을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는가.
언론의 역할은 하나의 시각으로 통일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언론은 행정을 집중 취재하고, 어떤 언론은 의회를 감시하며, 또 다른 언론은 기자실 운영의 공정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이 건강한 언론 생태계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만을 본질이라 규정하고, 다른 문제 제기를 주변적인 논쟁으로 치부하는 순간 언론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더욱 아쉬운 부분은 칼럼의 일반화다.
“깊이 있게 다룬 기사가 거의 없다.”
“언론은 침묵했다.”
“안전한 영역만 선택한다.”
이러한 표현은 강한 문장일 수는 있다. 그러나 강한 문장이 곧 강한 논리는 아니다. 객관적인 기사 분석도, 취재 현황에 대한 근거도, 언론별 보도 비교도 없이 언론 전체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비판하는 것은 논리라기보다 인상비평(印象批評)에 가깝다.
언론은 누구보다 사실과 근거를 요구하는 직업이다. 그렇다면 언론을 향한 비판 역시 사실과 근거 위에 세워져야 한다. 무엇보다 기자실은 언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의 공간이 누구에게 어떻게 제공되는지, 운영 기준은 투명한지, 특정 언론이 사실상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 역시 시민의 알 권리와 연결되는 공공의 문제다.
권력만 감시가 아니라 공공 시스템 전체를 감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의 본질은 누군가가 정해주는 하나의 답이 아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것도 본질이고, 언론 내부의 구조를 성찰하는 것도 본질이며, 기자실 운영의 공정성을 따지는 것도 본질이다. 진정한 언론은 불편한 권력만이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언론 환경까지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본질’은 선언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을 향한 질문도, 언론 스스로를 향한 성찰도,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한 끊임없는 기록도 모두 언론의 본질이다. 언론이 지켜야 할 것은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어떤 문제도 외면하지 않는 책임 있는 자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