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이름이 ‘미르’라는 말을 듣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르라는 말은 지금의 용의 모습으로, 순수 우리말로 쓰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르는 모험이라는 말도 내포하는 거 같다. 지금도 ‘미르의 전설’ 같은 게임은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오늘은 광주시 경안동에 위치한 미르를 찾았다. 실내로 들어가니 아담하고 세련된 분위기다. 커다란 시계다 눈에 들어왔다. 시계의 의미로 보자면 시간, 인간의 삶, 인생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어 길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한정적이라 조금은 어두울 지 모르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긍정적인 의미도 내포하는 거 같다. 시계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시계는 인생이란 생각이 들고 시간은 바쁜 일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거 같다. 아마도 이곳의 컨셉은 바쁜 일상속에서 잠시나마 삶의 활력소를 얻는 시간을, 이곳에서 천천히 삶의 방향을 잡고 시간을 조금이나마 느긋하게 즐겨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의미로 생각하니 반대쪽 벽면의 많은 책들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도 길이 있기 때문이다. 책 향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아늑한 공간속 와인보다 달콤하고, 키스보다 황홀
'진격의 오레오' 빙수를 맛보고자 카페에테를 찾았다. 진격의 오레오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명작 애니메이션(진격의 거인)을 풍자한 아이템이다. 거대한 거인의 모습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던 터라, 국내 여러 곳에서 패러디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이곳의 빙수 또한 평범하지 않다. 얼마나 거대해 보였으면 진격의 오레오라 불렀을까. 카페엔 삼삼오오 앉아 빙수를 맛보는 손님이 의외로 많았다. 역시나 인기상품, 겨울철이라 손님이 적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열치열이란 단어가 맞긴 맞나보다. 더욱이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연인들도 유독 많이 보였다. 이곳의 빙수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진격의 오레오’와 ‘폭풍의 민초빙’으로 알다시피 KBS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그 영향 탓인지 지금도 유독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잠시 가게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학생들 일행이 우르르 몰려오면서 약속이나 한 듯이 빙수를 주문한다. 학생들에게 이곳의 빙수가 어느새 입소문이 난 것이다. ‘진격의 거인’ 그 인기를 반영하듯 이곳의 빙수 또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빙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 보드 판에 적혀 있는
200년 전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용연에서 ‘용연지몽’이란 주제하에 화성문화제 전야제가 열렸다. 공연은 ‘용지대월’의 풍경을 재현이라도 하는 듯 전통적인 공연이 주를 이뤘으며 무대는 관악합주, 가야금산조, 대금의 명인인 박용호(전 한예종 교수)의 청성곡에 맞추어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8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방화수류정의 멋스러운 야경과 소나무 풍경. 달은 띄운 듯 달빛에 취해 있었고. 가야금 산조의 소리가 그 풍경 속으로 더욱 빠져들게 했다. 이날 가장 인상 깊었던 공연은 은은히 들려오는 대금소리와 용연을 도는 돛단배였다. 멋스러운 소나무와 용연의 풍경에 시민들은 자연스레 박수가 나왔다. 이어 한량무와 민요 한마당으로 이어져 시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전야제를 마무리했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을 보이는 11월 중순, 화려했던 단풍을 걷어내고 다가올 겨울철 준비에 한참이다. 김장철엔 유독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돼지고기를 푹 삶아 얇게 썰어 배추와 쌈장에 먹는 보쌈과 쌀쌀한 기온을 뜨듯하게 해 줄 '생두루치기전골'도 그 중의 하나다. 거북시장에서 이 음식으로 소문난 집이 있다면 ‘돈순네 생 두루치기’집이다. 외관과는 달리 역시 시장 안 식당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벌써부터 옹기종기 모여 막걸리를 한 사발씩 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오리 주물럭과 훈제, 백숙등도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특히 두루치기전골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기본반찬은 무말라갱이, 열무김치, 계란반찬, 오이김치 등이 나오며, 떡을 비롯해 돼지고기, 묵은지 등이 푸짐히 들어가 국물 맛을 더욱 얼큰하게 해준다. 두루치기는 안동의 양반가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두루’라는 이름은 다양한 재료를 두루두루 넣어서 사용했다는 의미가 있는데, ‘치기’는 재빠르게 무언가를 하는 동작을 뜻한다고 한다. 손님이 갑작스레 방문하였을 때, 집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 재빠르게 요리하는 대에서 유래됐다고 하며, 주재료에 따라 돼지두루치기나 두부두루치기, 삼겹살두루치
인류가 기원전부터 바퀴를 사용했지만 보행을 돕고 탈것이 나타난 것은 18세기다. 1790년 프랑스의 귀족 콩뜨 드 시브락이 만든 셀레리페르(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다. 이는 두 개의 나무 바퀴를 연결해 안장을 얹은 형식이었다고 한다. 그 후 오늘처럼 페달로 바퀴를 돌리는 형식은 80년 후인 1861년에 나왔다. 파리에서 대장간 일을 하는 페이르미쇼와 그의 아들이 앞바퀴에 페달을 단 나무 자전거(벨로시페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 자전거는 현대적인 자전거의 출발점으로 당시 탈것으로 크게 환영받았다고 한다. 벨로시패드는 61년엔 2대에서 시작해 65년에 400대가 팔리면서 대량생산한 첫 번째 자전거로 기록됐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간 벨로시페드는 나무바퀴 둘레에 철판을 씌었지만 노면의 진동과 충격이 심해, 바퀴에 통고무를 쓰면서 1860년대 후반 이 모델로 첫 레이스가 열릴 정도로 기술의 급진전을 이뤘다. 안정감과 스피드를 추구하는 당시 사람들은 1871년 앞바퀴가 유난히 크고 뒷바퀴는 작은 빅휠 또는 오디너리로 불리는 자전거를 내놓았다. 영국의 제임스 스탈리는 굴림바퀴의 지름을 크게 하면 같은 한 바퀴 회전이라도 달리는 거리가 늘어나 스피드도 달라지는 원리를
팔부자 거리에 위치한 문구거리는 매향여고 맞은편 북수동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팔부자 거리는 계획도시로서 수원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유한 도시로 육성키 위해 전국 8도의 부호와 상인들을 수원으로 옮겨 살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옛 한양의 부자들에게 이자 없이 자금을 대출해 줌으로써 지금의 거리에 점포를 차리게 해주거나 이주자에게 자금을 대여하는 등 화성 축성의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이 때 이들이 형성한 거리가 팔부자 거리이며 상업의 진흥을 꾀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게 했다고 해서 옛날에는 보시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한 200여 년 전 안성의 종이 제조 장인이 수원에 옮겨 살면서 종이에 대한 전통성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한 전통성을 이으려는 듯 20여 년 전부터 하나씩 들어선 도매 문구점들은 지금은 거리를 형성했다. 한 때 집장촌 지역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각종 문구점을 비롯 사무용품, 포장지, 복사지나 포토인쇄용지 등을 저렴하게 파는 문구 도매 상가들이 밀집해 있다. 거리는 옛 향기가 곳곳에 묻어 있다. 오래된 건물들은 70년대를 연상케 한다. 좁은 골목길도 있으며 여러 이야기를 담은 벽화들이 여러 곳에 그려져 있다. 여러 가지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는 말이 지겨울 정도로 더위가 한창이다. 더위가 계속되면 식욕도 떨어지고 능률 뿐 아니라 잠도 설치기 일쑤다. 그렇다고 외부활동을 안할 수도 없는 노릇! 근처에 맛있다는 보리밥 집을 찾았다. 산에서 먹는 것과 다른 느낌이다. 구수한 청국장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기다린 듯 숭늉이 입안을 가시게 해주었다. 뚝배기엔 비지와 청국장을, 그릇엔 채소와 반찬들로, 이 조합으로 적절히 넣고 섞어 비비면 된다. 고추장을 모양새 좋게 보리밥위에 뿌렸다. 빙글빙글 도는 모양 또는 웃는 얼굴, 기분이 안 좋으면 지그재그로 고추장을 풀어 넣는다. 그 때마다 맛도 달라지는 듯하다. 이내 참기름을 뿌리면 준비는 끝. 적절히 섞어 먹으면 된다. 식욕이 없는 요즘. 보리밥으로 식욕을 돋구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화령전은 사적115호임에도 불구하고 화성행궁의 부속건물의 이미지로 전략한지 오래다. 별도의 출입구 없이 운영되는 화령전은 화성행궁으로 들어와야 관람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인근주민과 단절된 느낌마저 든다. 화령전은 1800년 6월 28일 정조대왕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정조대왕의 어진(초상화)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어진봉안각이다. 국왕 순조가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찾아가 문안을 여쭙는 전각이기도 했으며, 특히 정조의 사당인 이 곳에서는 역대 국왕의 현륭원과 건릉을 다녀갈 때마다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화령전에는 정조의 어진을 봉안한 정전인 운한각과 풍화당, 화재나 홍수 등 만약의 사태가 났을 때 정조의 어진을 옮겨 모시는 이안청, 국왕 및 제사를 모시기 위해 화령전에 온 관리들이 몸을 깨끗이 하고 대기하는 재실, 화령전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업무를 보는 전사청 등이 있다. 우리는 정조의 정치철학과 효심을 본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수원화성의 위대함, 화성행궁의 아름다움, 무예24기와 같은 용맹함을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은 외면 받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주민과 관광객에게 외면 받고 있는 사적 115호 화령
내린 비는 자연을 식히기에 충분했다. 오전에는 선선한 날씨를 보여 이내 산뜻한 마음마저 든다. 그러나 이런 날도 잠시, 태양은 다시 뜨겁게 달궜다. 한 주를 시작하는 마음에서 가까운 만석공원을 향했다. 광교산을 오를 예정 이였지만 비로 인해 취소했다. 만석공원은 1795년 수원화성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공원이다. 만석거는 수원에 화성을 축성하면서 이곳에 백성들과 인근지역에 장용영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많은 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예부터 곡창지대였던 수원지역에 정조는 더 많은 쌀을 생산하기 위해 저수지 농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당시 주요한 저수지는 농촌진흥청 앞에 있는 서호인 축만제, 만석공원에 있는 만석거, 얼마 전 발견된 만년제가 그것이다. 만석공원에도 둘러볼 수 있는 1.3km의 코스가 있다. 볼거리도 다양하다. 남수문을 닮은 교각과 영화정이 보인다. 영화정은 ㄱ 모양인데 개방을 하지 않아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둘레길로 다시 들어오니 간간히 자전거가 지나갔다. 이곳 조깅 코스는 자전거나 인라인을 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도심에서는 인라인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마음껏 탈
동물 중 하나의 과(科)로써는 가장 성공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종류이다.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전 세계의 개미 수를 모두 합치면 약 10,000,000,000,000,000 ~ 20,000,000,000,000,000(1경 ~ 2경)마리가 된다고 추산하고 있다. 여왕개미와 수개미, 불임 노동계급인 일개미로 나누어져 있다. 김홍범 기자(flashcast74@daum.net)
그 시작을 고하는 '작헌의’, 화령전을 다녀오다 지난 2012년 화령전 ‘작헌의’ 행사가 진행됐었다.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1801(순조 원년) 정조대왕의 유지를 받들어 화성행궁 옆에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 영전이라고 하면 보통 제사를 지내기 위해 신위를 모신 사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한다. 화령전엔 정조대왕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살아있을 때와 같이 봉안해 놓았기 때문이다. 화령전의 이름은 화성에서 화를 가져왔고, 국풍주남 갈담의 마지막 구절인 ‘부모에게 문안하리라’에서 ‘령’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묘전각의 편액은 순조가 직접 썼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화령전에서 열리는 의식행사인 ‘작헌의’는 술따를 ‘작(酌)’ 바칠 ‘헌(獻)’ 으로 임금이 손수 잔을 올려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하며, 왕비의 조상이나 문묘의 신위에 국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던 제도로서 본래는 계급이 낮은 하관이 상관에게 하거나 제자가 스승에게 아뢰거나 물어보고자 하는 말이 있을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술병을 들고 찾아가는 예'라고 생각한 데에서부터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러한 의식이 발전하면서 작헌은 산 사람 사이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도 소원을 빌면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팔달산이지만 그동안 찾지 못했다. 어렸을 적 성곽을 자주 오르곤 했는데 화성에 대한 역사는 알지 못했다. 성곽을 보고자라 애정이 많고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지식을 쌓은 듯하다. 팔달산은 수원 중심부에 있는 작은 산이다. 화성이 걸쳐 있으며 곳곳에 문화유산과 선조들의 발자취도 녹아있다. 향교를 비롯해 성신사, 정조대왕 동상, 절(팔달사), 억새밭, 산책로, 약수터, 소나무군락지, 돌 뜨던 자리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팔달산에 오른 건 오후 3시경 팔달보건소를 지나 팔달산으로 향했다. 오르는 길 우측엔 수원향교가 있다. 수원향교는 고려 원종 22년에 봉담읍 와우리에 세워졌던 것을 화성 축성과 함께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향교엔 공자, 맹자 등 선인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향교는 지방에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동시에 담당하였다고 한다. 향교는 앞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두고 뒤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했다.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
팔달문 지역 전통시장 탐방길 수원도심의 허파역할을 하는 수원천 사이로 양 옆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전통시장이 많다. 인근만 해도 지동시장을 비롯해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남문패션1번가, 영동시장, 팔달문시장, 영동시장, 로데오거리 등이 있다. 통닭거리는 수원의 새로운 명소이다. 순대타운인 지동시장에서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면 ‘미나리광시장’을 만나볼 수 있다. 얼핏 보면 시골 '장’ 인 듯 규모가 작아 보여도 1950년대부터 상인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한때는 시장 규모가 꽤 컸던 곳이라 한다. 지금은 50여개 상가가 성업 중에 있다. 어디에나 시장엔 명물이 있는 법 바로 40년 전통 ‘추억의 도너츠’가 그 중의 하나이다. 특히 추억이 새록새록 담겨있는 도너츠 맛은 인근에서도 최고로 손꼽는다. 지동뻥튀기, 방앗간, 붕어빵 가게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옆은 못골시장이 위치해 있다. 현대화 시설로 100여개의 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수원에서 가장 표준적인 생활에 기반을 둔 재래시장이다. 반찬가게가 많고 녹두빈대떡과 족발집도 유명하다. 기타 생활에 필요한 도자기뿐만 아니라 약초집도 이곳에 들어서 있다. 남문패션1번가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만 해도 1
서쪽방어의 요람 서북각루와 서북공심돈 서장대에서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서북각루에 꼭 한번 올라가 보자 이곳은 나름 숨겨진 명소이다. 가을의 억새밭 풍경과 더불어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의 풍경이 웅장한 느낌을 다가온다. 억새밭이 있는 곳은 화서공원이며 서북공심돈으로 지나는 길은 장안공원이다. 두 공원은 화성 성곽과 함께 걷기 좋은 완만한 코스로 방화수류정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엔 장안문에 위치해 있는데 화성의 북쪽 관문으로 정조18년(1794년)에 건축됐다. 장안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역사에서 국가의 안녕을 상징하는 문자로 태평성대를 구가한 한·당의 서울이었던 장안의 영화를 화성에서 재현하고자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장안문엔 성혈흔적이 있는데 옛날 사람들에겐 장안문을 신성시 여겨 이곳에서 돌이나 쇠붙이 같은 걸로 비비면서 소원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옹성과 적대가 붙어 있어 그 어느 곳보다 방어력이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는걸 알 수 있다. 또한 옹성은 장안문의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물로 바로 옆엔 그 어느 곳보다 튼튼히 지어진 적대를 볼 수 있는데 좌측엔 북서적대 우측엔 북동적대와 북동치가 장안문의 방어력을 더욱 견고히 한다. 장안문 외각엔 수원의 중심상가지역
처음 한 것은 연무대에 위치한 국궁활쏘기체험이다. 보통 사람들은 활쏘기 경험이 아주 없기에 국궁 사용법을 설명 받고 활시위를 당겨봤다. 처음 경험자들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현상이 있을 수 있다. 과녁 맞추기도 버겁다. 그것은 운동신경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근엔 동장대와 연무대 그리고 동북공심돈이 위치해 있다. 과거엔 이곳이 병사들의 훈련을 체크하는 중심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화성에서도 주요한 전략적인 공간으로 화성의 특징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화성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동장대’와 ‘동북공심돈’ 동장대는 꽤 넓은 공간으로 병사들의 훈련을 체크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건물이기도 하다. 안쪽의 온돌은 겨울훈련을 고려한 듯 보인다. 또 우기에 빗물이 고이지 않게 설계 되었다. 뒷면은 ‘영롱담’ 이라는 꽃문양의 담장이 있다. 동북공심돈은 튼튼히 보이는 화성의 건축물중의 하나인데 화포구멍이 사방으로 나있어 요새안의 요새 역할도 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이것은 적들이 성벽을 넘어 침투했을 것으로 안쪽의 적들을 섬멸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인근엔 창룡문과 담장이 아름다운 창룡마을도 둘러볼만 하다. 총괄 지휘소인 ‘서장대’와 팔달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