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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협업으로 이루어낸 보훈혁신


▲ 경기동부보훈지청 양진건


머내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동천동의 옛 지명이다. 99년 전 1919년 3월 29일. 당시 산골마을이었던 이곳에서 수천 명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머내는 99년이 흐르는 동안 원래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고 외부에서 이사 온 더 많은 사람들로 도시를 이루었다. 


그 장소에 새로 들어와 살고 있는 현재의 사람들이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던 그 시간에 그것을 기념하는 재현행사를 자발적으로 개최했다. 


학생들은 손수 태극기를 만들고 어른들은 오래된 문헌과 원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만세운동 경로를 고증했다. 


행사 내용도 다채롭다. 만세운동 길을 따라 수백명의 시민, 학생이 걷기대회를 하면서 독립군가 노래부르기, 가래떡 나눠먹기, 동네 합창단, 대동판굿, 드론촬영. 머내 사람들은 100년 전 만세운동에 참여하고도 기록을 찾지 못해 포상을 받지 못한 분들의 후손들을 찾아 나섰다. 


현재 머내에 살고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후손을 시작으로 한 명, 두 명 후손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처음 행사를 준비했던 것처럼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읍지, 실록 등 간접자료를 모두 모아서라도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러한 머내의 노력을 제일 처음 접한 것은 신문 기사에서다. 곧장 연락하고 공동 노력에 착수했다. 후손 분들을 같이 만나고 신청과 관련한 세부 준비사항을 공유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기 위해 머내만세운동 발굴을 경기동부보훈지청의 혁신과제로 선정했고, 구청, 대학교 등과 함께 보훈혁신자문단을 구성하면서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자문위원들의 회의와 활동을 거듭하면서 만세운동 참가자의 희생 기록을 수지면사무소를 승계한 수지구청 문서고에서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만 기대했던 것을 현실에서 확인한 짜릿한 순간이었다. 일제의 기록 ‘범죄인명부’는 명예로운 훈장으로 보였다. 용인헌병분대가 ‘태 90’이라는 즉결 처분을 내렸다는 글귀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후손 분들과 자문위원들이 다시 모여 작성한 공동신청서에서 목이 메였다. 


“우리는 1919년 3월 29일 용인 수지면에서 일어났던 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일제에 의해 희생된 독립운동가 17명의 공적기록을 발굴하고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한다”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민간단체가 협업으로 이루어낸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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